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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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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오호근 선생님 후기

나는야 섬마을 선생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중학교라는 근거는 사실 없다. 어쨌든 내가 있는 곳은 시골이다. 나는 책 읽고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 근무지와 생활 근거지 모두 농어촌에 있어서 독서 모임을 하기에 어려운 환경이다. 평소 민정 쌤이 운영하는 모리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민정 쌤이 밥 사준다는 이야기에 무리해서 대구 나들이를 했다. 바다와 방바닥만 바라보고 사는 나에게 대구의 길거리와 오가는 사람들과 음식들은 도파민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내년 새로운 근거지로 이주하게 되면 그때는 독서 모임을 하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 날 모임으로 찍먹 해보기로 했다. 나는 ‘두려움은 반응이고, 용기는 결정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번 대구행도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진행 방식은 각자가 준비한 페이퍼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오갔고,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다. 메인 MC 민정의 진행은 발군이었고, 여러 참가자들 모두 대화의 달인이었다. 알고 보니 의사 선생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선생님이셨다. 그럼 그렇지… 운영자이면서 두 달 동안 모리에 출근 도장을 찍지 않았다는 데 모임이 잘 운영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투버 침착맨이 유퀴즈에 출연해 자신의 인방을 키즈 카페 같은 방식이라고 이야기했다. 모리도 어덜트 카페였다. 찐 어른들이 책을 읽고 자신을 읽고 다른 사람들을 읽어 내려가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책만큼이나 흥미로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수정님은 성격 기질 검사를 직접 해보셨다고 했다. 나는 추측에 기반해 나의 성격과 기질을 이야기해보자는 질문을 남겼으나 직접 해본 사람이 있으셔서 대화에 깊이가 더해졌다. 건강하게 도파민을 얻는 방법을 이야기 나누었을 때도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구정(설날 아님) 님이 꽤 긴 리스트를 준비하신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든 결혼 예찬으로 끝나는 결혼 전도사 민정, 참 부러웠다. 이재원장 님이 해주신 전공의 이야기는 여운이 많이 남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억울하고 힘드셨을까. 얼마 전 강연에서 들었던 은유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다’ 그동안 언론과 정부의 농간으로, 선배 의사들의 잇속 챙기기로 상처 받은 전공의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언어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으리라.
책을 말하고, 사람을 읽고, 대화를 써내려 가는 3시간이 값졌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았다. 쉽지는 않은 일이나 다시 뵙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혜수 쌤이 반가웠다. 민정 쌤 결혼식에 이어서 다시 만났는데 세상 환한 미소로 나를 반가워 해주셨다. 혜수 쌤은 한편으로는 놀라움도 주었는데 퇴근과 방학을 싫어한다는 말씀은 나에게 충격을 선사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기능 대회 준비, 야구, 독서와 대화로 열의가 가득하신 상준 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찜닭으로 대구의 참 맛을 알려주신 이재원장님께도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좋은 모임을 8년 동안이나 이끌어왔다는 민정 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한 권의 책이라면, 사람의 하나의 우주라면 모두 마음 안에 담아내기에 짧은 만남이었으나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 지적인 도파민을 추구하는 운영자 민정 님과 여러 선생님들(의사 선생님 포함)께 경의의 마음과 반가움의 마음과 응원의 마음을 적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