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안정적인 관계 없이 여기 저기 발을 들이기만 했다. 어디에 속하든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다. 세상은 문제 투성이였고, 사람들은 나약하고 가벼워 보였다.
그런 세상에선 조금만 정신줄을 놓아도 공격 받기 일쑤였다. 그래서 늘 정신을 날카롭게 갈아뒀다. 부딪히고 다투는 동안 많이 성장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실망도 했다. 세상에 정의나 진리 같은 건 없으며, 결국 파워게임에서의 승자가 진실이고 정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지 못하면 먹히고, 어중간하면 이용당하는 노예가 된다.' 그게 작년 여름쯤 내 머리를 무덥게 압박하던 생각이었다. (사실 지금도 비슷하다. 한데 이젠 어떤 생각도 나를 '압박'하지는 못한다.)
그런 내겐 모리도 정복의 대상이었다. '조금만 엇나가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또 기분 나빠하거나 공격하겠지.' 그렇다면 결국 내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러려면 파워 게임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모리 사람들은 내 의견에 특별히 반박하거나, 날 누르려 하지 않았다. 내 이야길 진심 어리게 들어주는 사람들을 보니 아주 오랜만에 사람에게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때 이후로 일도 더 잘됐다. 지지부진하던 소설도 잘 써졌고, 도저히 해결되지 않던 마음 한 켠의 스트레스 또한 씻은 듯 사라졌다. 세상 모든 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모두와 경쟁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쉼터가 필요하지만, 누구나 얻을 수는 없다. 내게 있어선 가족도 못해주던 그 역할을 모리가 대신해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리에 나갈 때면 '모임에 간다'라고 하지 않고 '친구들 보러간다'라고 말했다. 다분히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규정한 여섯가지 사랑의 유형(애로스, 플라토닉 등 여섯가지 있는데 이름은 다 기억이 안남.) 중 최상위의 가치는 '가족애'와 '오랜 세월과 추억으로 형성된 정'이다. 모리에 잘 스며들기만 한다면 누구나 이 두 가지의 최상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